다랑쉬오름 역시 명칭의 유래가 여러가지인데 . ‘달랑쉬’ 또는 ‘도랑쉬’는 부여·고구려어 ‘달수리’의 변화라고 한다. ‘달’은 높다·산·고귀하다 등의 뜻을 가졌고 ‘쉬’는 봉(峰)의 뜻을 가진 ‘수리’에서 ‘ㄹ’이 탈음되어 ‘수리→수이→쉬’로 변한 것으로 ‘높은 산봉우리’라는 뜻인 ‘달수리’란 원어가 ‘달쉬’로 준 것이 사이에 아무런 이유없이 ‘랑’이 붙여져서 ‘달랑쉬’가 되어 ‘다랑쉬, 도랑쉬’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다랑쉬(도랑쉬)는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며, 원어 ‘달수리’의 변화된 형태로 남아있는 고구려어라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비오름처럼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제주도 오름이름이 예쁜이름들이 많고 언어학적 가치가 아마 엄청날 것이라 예상합니다. 용눈이,아끈다랑쉬,따라비,새별,백약이 오름 뿐아니라 제주도 그외 특이한 지명 방아왓,살손장,~므르,진드르,굼부리,가는곶,난뜨르,돈내코,날외 등등 아마 어원과 유래를 찾아보면 많은 의미가 있을것 이라 생각한다.
다랑쉬오름 바로 곁에는 다랑쉬오름의 축소판이라는 이름도 예쁜 아끈다랑쉬 오름이있다.
다랑쉬오름 정상에서 다랑쉬오름의 자식같은 아담한 모습의 아끈다랑쉬오름을 찍어봤습니다.
다랑쉬굴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 입니다. 제주도 밭은 흙 색깔도 탄듯 다 시커멓습니다.
다랑쉬오름 입구 처음은 계단으로 시작합니다.
다랑쉬오름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대표오름인 만큼 방문자센터,주차장 이 있습니다. 몇일전에 올라가본 따라비오름에도 주차장은 있었지만 좀더 야생의 느낌이 났거든요.
올라가는 경사가 좀있어 땀좀 흘렸습니다. 모델은 큰딸아이 ^^ 걱정을 했는데 잘올라가는군요.
정상에 올라오는 모습 뒤로 바닷가 풍경이.. 사람이 언어로도 글로도 표현이 안될땐 감탄사뿐이죠. 와....
경치에 빠져서 구경하다가 남기고 싶어서 아이폰을 들고 여기저기 막찍었습니다. 이번엔 바다와 밭을 담고싶었는데 멋진 사진 찍는 분들이 부럽습니다. ^^
우리나라 어느곳에서 또 이런 풍경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본 굼부리(분화구) 입니다. 민간에선 굼부리가 달처럼 이뻐서 다랑쉬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유래가 있다는데 아담하니 예쁜건 확실합니다.
올라가는길에 심심치 않게 여러 야생화들을 볼 수 있읍니다. 예뻐서 찍어 봤죠.
넌 이름이 뭐냐?
또 이름 모를 야생화
정상에서 바라본 바닷가 쪽 풍경 , 정상 산불관리초소에서 근무하시는 분이 설명 하기를 날이 맑을때 여수의 여서도 완도군의 유명한 청산도 동쪽으로 거문도 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아~제주도
멀리에 보이는 풍력 발전기 오름 가까운 곳 어느쯤에도 풍력 발전기가 있는데 아래 사진의 풍력발전기 와 연결시켜보면 그것이 바람길이겠지..
오름 정상에 있는 산불 감시초소 9월은 근무기간이 아니지만 초소에 감시하는 분은 계시더라는.. 11월 부터 정식 근무 하신다고 합니다.
굼부리 주위를 감싼 정상 등산길
저만큼 바람길에 있는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제주는 바람
저기 멀리 보이는 용눈이오름을 구경하면서 하산하는 중 경사가 높다고하여 걱정했는데 잘 내려가고있는 아이와 할머니 ^^
다른 이야기
다랑쉬 오름 근처에는 다랑쉬굴이 있습니다. (지방도에서 다랑쉬오름 입구로 들어간뒤 그입구에서 주차장가는길 사이에 있습니다) 아픈 우리나라 현대사의 현장 중 하나인데요. 억울한 죽음을 잠깐이라도 기억해보고자 들려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주엔 4.3 사건이라는 아픈 현대사가 있는데요 당시 군,경,관 의 치안유지 목적이라는 명분으로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아니 학살이 있었는데요. 희생된 숫자가 어마 어마 했다고 합니다. 명분은 치안유지인데 소위 "빨갱이" 척결 이었는데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는 항상 무고한 양민이었죠. 생각하면 정말 가슴 아픕니다. 게다가 당시 군,경 이라는 조직들이 일제시대때 일본놈들 밑에서 부역하는 개(견,dog)들이 해방후 그대로 미군정하에서 치안유지라는 명분하에 이런 만행아닌 만행들을 저질렀습니다. 당시 다랑쉬마을도 이 역사의 풍파를 비켜갈 수 없었고 피난으로 다랑쉬굴에 몸을 피해 있었답니다. 그런데 경찰에 발각되어 굴에서 나오라고 종용을 해도 나오질 않아 굴 입구에 불을 피워 버렸는데 연기에 질식에 모두 죽었다고하는데요.1991년 최초 발견시 11구의 시신이 나왔는데 모두 유부녀 와 아이들 이었답니다. 그리고 1992년 유해는 유족의 반대에대 불구하고 화장되었고 유류품은 다랑쉬굴에 그대로 두고 시멘트로 막아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감추고 막아도 우리는 기억해야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어쨌든 다랑쉬마을은 그 역사의 풍파로 폐촌이 됩니다. 억울한 민초들의 죽음이 다랑쉬마을에만 있었겠습니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밉니다. 부모님이 살고계신 근처에는 제주시민이 많이 찾는 사라봉(오름)이 있는데 이곳에도 4.3 사건 당시 희생된 수많은 시신을 매장 했다는곳이 있답니다.억울한 원혼들을 어떻게 달래야할까요.
비무장 양민이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하면 선동한다고 목소리는 높이는 욕나오는 인간들이 지금도 있기에 생전에 임종국 선생님은 말씀하셨겠죠. 친일파는 살아있다고. 친일 청산없이는 미래는 없다고 말이죠. 좌파던 우파던 팩트는 일제시대부역한 주구들이 미군정하에 공권력의 중심들이었다는 사실이고 좌,우 던 이데올리기의 희생양은 항상 민초들어있다는점 그래서 행동하지 않은 지식인은 자의던 타의던 역사앞에 떳떳하지 못한다는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다랑쉬굴 가는 근처
다랑쉬굴로가는 푯말
근처 풀밭
가는길이 이런 표지판이 전부이지만 다랑쉬오름 가는길에 한번 들려보는것도 괜찮을듯 합니다.
다랑쉬굴 근처에있는 관련 푯말
또 근처에 관련 내용이 있는 안내판
편히 잠드시길, 그 희생자가 내 가족이라면 과연 유해를 화장해 바다에 뿌리는걸 찬성했을까? 92년이면 군사정권때여서 아마 이런 어두운 역사는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성역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동굴입구를 시멘트로 막고 역사의 풍파에 희생된 개인의 죽음 소홀히하는그 후 모든 정부는 이런 역사는 반복하지 않아야한다고 후대에게 알려야하지않겠나. 그래야 이 굴속에서 희생당한 억울한 죽음 그리고 그 당시 곳곳에서 무고하게 학살당한 민초앞에 후손인 우리가 조금 이라도 떳떳하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마지막이 조금 무거운글 같아 마음이 다운되지만 오름의 여왕이라는 다랑쉬오름을 제주에 오면 꼭 한번 올라가보세요. 바다, 바람, 사람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