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반기련을 내집인양 들락인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론도 신념도 없는 끌림에 동요된것같다. 이유를 찾자면 기독교인들의 오만함과 타종교에대한 배타성을 볼때면 화가 치밀어 올라 반기련의 안티바이블은 나에게 기독경 만큼 의미있는 글이었으니...어쨋든 지금의 난 여전히 불가지론자이며 수준낮은 형이상학 집합처럼 보이는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좀 더 이야기하면 종교는 이미 신화의 신비와 감성이 사라진후 잔존물이기에 종교에서 신화적 감성과 상상력을 찾아내기란 이미 미로속 길찾기를 만들어버린 것이 현대의 종교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당시라면 난 이런 책을 손에들고 읽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을것이다. 제목이 눈에 띄어 나는 수준높은 반론을 기대하며 짚어든 책인데 역시나(?) 노잼이다. 아주 "핵 노잼"이다.
저자는 신학자에 신앙인이라면서 글 어디에서도 영성은 전달되지 않는다. <기독경>안에서 <기독경>을 옹호해야하는 입장이라 저렴한 논리와 변론의 연속이다. 이러한 의식의 편협함은 어디에 기인한 것일까?
경전 안에서 경전을 옹호하고자하니 괴변이될 수 밖에없고 범위는 조악하다. 어떤곳은 신의 말씀이며 어떤 곳은 역사이며 어떤곳은 비유이니 한마디로 코에걸면 코걸이 귀에걸면 귀걸이다. 신학자로서 오만함은 다양한 종교를 연구하고 내가알기론 크리스챤이며 저명한 종교학자까지 디스를 하는부분에선 절정을 이룬다. 차라리 개인의 종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한 개인의 종교체험을 이야기했다면 변증이 더 설득력 있었을텐데 아쉽다.
우리나라 개신교인의 90%가 넘은 비율이 근본주의자 라고 한다. 이 말은 천지가 6일만에 만들어졌고 공룡은 사람과 같이 살았으며 아득한 먼 옛날 대홍수로 모든 생명이 절멸후 지금의 생명들 다시 모습을 갖추어졌음을 믿는사람들이 많다는 소리다. 종교적 맹신은 어떤 형태로든 공포스럽고 불안한 사회적 분위기에선 폭력적으로 변할가능성이 다분하다. 저 멀리 다른나라까지 가 그것도 다른 신앙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까지 직접가 전도하는 젊은이들을 순수한 열정이라며 치켜세우는 모습엔 실소가 나온다. 귀양살이 종교라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엔 왜이렇게 기형적으로 정착이 되었을까? 나라잃은 경험이 우리와 공명한것일까? 아니면 전쟁 후 기득권을 지키는 이데올로기 적합한 옷이었을까?
포이어 바흐의 말이 이런상황에선 아깝지만 빌린다. "신학은 인간학임을 신학자들은 고백해야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또는 일요일 교회에서 '오직 믿음'이라는 신념아래 아멘~을 외칠 근본주의자들에게 묻는다. 스위스 알타미라 동굴 벽화에서 크로마뇽인의 영성이나 스위스 드라헨 로우 동굴에 있는 네안데르탈인의 그 어떤 영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아담은 배꼽이 존재하는가 존재하지않는가?
신 벗어던지기 - 블루칼라 지음/미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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