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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누웰레신화


프로베니우스 산하 연구원인 엔젠과 니게마이어가 서세람섬을 중심으로 그곳의 원주민들의 설화를 채록하였다. 지도를 http://iramine.com/131  보면 현재 파파뉴기니 서쪽섬에 위치해있다. 밀라노브스키의『서태평양의 항해자들』의 배경은 동쪽에 있는 섬들이 배경이었는데 『하이누웰레 신화』는서쪽 섬들이 배경이다. 총 433편의 설화가 수록되어있고 의미있는 설화는 몇편은 신화로서 간주되어 연구대상이다. 특히 코코야자나무 가지의 피에서 태어난 하이누웰레 소녀이야가 그것이다. 하이누웰레는 코코야자나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배설물에서는 온갖 귀중품이 나오는 신비한 소녀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시기로 마로춤을 추는 과정에서 그들에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녀의 남자가 토막난 하이누웰레의 시신을 찾아 다시 묻자 현재의 온갖 구근식물들이 나왔으며 이사실을 알게된 신화적여신은 하이누웰레의 양팔로 마로춤을 춘 인간들을 심판한다. 하이누웰레의 팔에 닿는지 여부에따라 인간과 정령으로 나누었고 왼쪽과 오른쪽에 따라 나누었다. 지금의 마을의 아홉씨족, 다섯씨족 분류의 시작은 그때 부터였다.

엔젠은 이 신화를 농경문화에서 나타나는 작물 기원신화로 보았고 다른 농경문화 지역에 전승되어온 비슷한 신화들과의 유사성을 '문화전파'로 설명하려고하였다. (프로베니우스학파) 앞선글에서 언급했듯 그 당시 인류학이 영국중심의 사회진화론적인 견해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프로베니우스 학파의 관점은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엔젠은 신화적 시대 최초의 살인을 통한 창조 신화를 '하이누웰레'형으로 신의 세상으로 부터 불을 가져온 문화영웅 프로메테우스의 이야기와 같은 유형을 '프로메테우스'형의 신화로 나누었다.

책을 읽어가다 어떤 이야기에선 우리나라 전래동화가 자연스레 생각나기도 하였다. 신화를 문화가아닌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면 바다건너 저 멀리 떨어진 세람섬 원주민들의 신화적 감성은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면 비합리적인 생각일까? 이 분야 대가인 레비스트로스도 『신화학』을 통해 신화의 연결성을 언급한걸 보면 그리 허황된 생각이 아닌라는 생각이든다. 하이누웰레 신화의 설화들을 레비스트로스와 같이  언어학이라는 도구로 도식적이고 구조적인 방법으로 해석을 시도한 학자는 없나 궁금해졌다. 이정도 자료면 충분히 신화분석으로 최소한의 재료는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러한 기괴하고 자연적며 날것의 이야기들을 접하면 항상 하나가 궁금하다. 집단이 오래도록 공유하며 현실에까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제의,터부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신화는 도데체 어떤의미가 있는가이다. 앞 포스트에도 반복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이러한 신화는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루만져주고 존재론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하이누웰레 신화에서도 알 수있듯 신화적 시대에 "죽음"은 최초의 살해를 통해 시작되었다. 그런데 하이누웰레는 새로운 작물을 창조하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죽음"과 "창조"의 역설적인 상황이 신화속에선 버무려져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는 바로 농겨문화에서 생활하는 고대인의 삶에 대한 통찰인 것이다. 즉 인간은 이 세상의 죽음을을 먹고산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위해선 다른 생명을 죽여하는 부조화스러운 존재인것이다. 또한 인간은 성(sex)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해내기도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들은 더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호모사피엔스의 '로고스'로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상황인것이다. 이러한 '미토스'적감성이 이러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해결하는것이다. 이는 원시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의례에 있어서도 큰 연관이 있게되는 것이다.(집단의 영적 결속성)  개인적으로 두번째 호기심은 이렇다. 자동차를 타고 거대한 우주의 역사적 시간도 알게되었으며 기나긴 생명의 역사에서 우리가 진화해온 존재라는 비밀(?)을 알게된 현대인에게 비현실적이고 때론 기괴한 이런 신화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찾아가려고 하는 과정인데 이 분야의 대가들은 개인이 아니라 더 나아가 신화속에서 현대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해법을 찾으려 하고있다. 개인 적으로 좋아하는 조셉 캠벨은 현대에서 신화는 살아있으며 개인의 신화를 만들어가야한다고 하였다. 뭔가 시적이며 영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우리의 감성은 영적인부분이 있다는사실 또한 부인못하는 사실이지 않을까 한다.

『하이누웰레 신화』는 채록된 설화가 내용의 주를 이루지만 탐험대에 함께한 미술가의 작품인지 원주민들의 생활상이 삽화로 군데군데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을 보는것도 잔재미이다. 나는 구글어스를 펼쳐놓고 세람섬 주변으로 등록된 사진들을 구경하였다. 삽화들에 나온 원주민의 모습들과 비교해보면 문명화 된것 같기도하고 해안가에 교회가 있는 곳이 많아 완전히 기독교화가 되었나 싶은생각에 조금 언짢은 생각도 들었는데 푸르른 바다나 섬의 풍경들은 엔젠과 니게마이어가 탐험했던 그때 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언짢은 생각이 자연스레 수그들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웨말레족은 지금도 있는것인가? 어디에 있는가? 구글어스를 펼쳐 놓고 책을 읽어가며 이 지역 풍광만큼 신비로운 신화를 읽어간다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모습은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 올 것이라 생각해본다. 내가 그랬으니깐...^^


하이누웰레 신화 - 10점
아돌프 엘레가르트 옌젠 & 헤르만 니게마이어 지음, 이혜정 옮김/뮤진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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