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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위한변론-카렌암스트롱

category 책/신화,종교 2015.04.19 17:30



이 책은 고대종교부터 포스트모더니즘 까지 종교전통을 나열하여 종교의 진짜의미를 밝히는 과정의 책이다. 여러 제도 종교를 통해 카렌 암스트롱이 찾은 종교의 참의미는 무엇일까?

종교는 종교라는 열매의 껍질에 위치해 있는 교리에대한 믿음이아니라 그 알맹이는 행동을 통한 인간의 새로운 의식발견과 확장이었다. 여기서 행동이라는것은 무엇을 말하는것일까? 암스트롱이 반복적으로 말한 이타심의 규율 즉 "내가하기 싫은일은 타인에게도 하지말라" 라는 황금율을 말한다. 이 이타심은 타인에대한 "공감"에 기반해 자신을 버리고 타인에대해 진정한 측은지심을 느낄때 우리는 소위 '신'을 만나고 우리의 의식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된다는 것이다. 

중요한점은 원래 종교의 참 가르침은 바로 이것이었다. 유대교의 랍비들은 열린마음으로 토라를 연구하는 행위자체에서 영적수행을 쌓아나아갔으며 토라의해석은 항상 개방과 창의적 해석을 통해 낮은자세로 이루어져 실제 삶에 적용되었다. 심지어 원전의 맥락을 훼손하는것도 서슴치 않고 말이다. 이는 성경의 초기TEXT 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온전히 신의 말씀으로 씌어져 한치의 오류도 없으며 성경의 모든 TEXT를 역사적 독법으로 읽는 근본주의자들은 경악하겠지만 실제 성경은 귀양살이하는 히브리민족이 처한상황과 자괴감 , 소외감등을 종교적 상상력으로 표현한것 뿐이었다. 또한 이런한 근본주의는 최근의 일이라는 점을 알아야한다. 오리게네스,아우구스티누스,위 디오니소스,아퀴나스 등의 교부들은 성경을 축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심지어 종교개혁의 한가운데 서있는 루터는 천문과 우주에대한 지식은 성서에 없으니 과학에서 찾으라고하였다. 대부분 개신교인들은 큰의미로 루터주의일텐데 지구의 역사를 성서를 근거로 6천년으로 간주한다면 자기모순이 아니겠는가? 

암스트롱도 언급하듯 기독교의 근본주의 부흥은 최근의 일이다 근본주의 심연에는 시대적 불안과 공포가 있는데 이는 이슬람, 유대교 등의 다른 유일신교에도 나타난다. 특히 이슬람은 가장 늦게 근본주의가 나타나 종교다. 가끔 TV뉴스를 통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듯 근본주의는 폭력적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서구의 삐뚤어진 시각으로 투영되어 우리에게 각인되 이미지가 많아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현대 이슬람의 폭력성에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서구에 있진않지만 일말의 책임역시 서구에 있다는것도 맞는말이다. 사실 이슬람의 폭력성은 종교뿐 아니라 정치적,민족성등의 매커니즘과 연관있다고한다. 

어쨌든 아무리 서구의 종교에서 이슬람의 폭력성과 부정적인 모습만 선택하여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과거 기독교가 자행한 십자군 전쟁, 중세 마녀사냥등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한 사실은 변하지않는다. 또한 이슬람에대한 오해를 키워 갈수록 이슬람은 더 폭력적이 될것이라는 것은 과거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유추 할 수있으며 문제해결에 도움이되지않는다는것을 알아야한다.


현대는 이성의 승리한 것처럼 보이나 전투적 무신론 진영인 리차드 도킨스,해리스,히친스의 주장에대해서도 한계성을 지적한다. 이들은 종교의 표층만 공격하고 있으며 경전의 선택적 취사를 하여 근본주의가 종교의 전부인것으로 간주하고 또한 배려가 없이 편협하며 공격적 이라는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그렇게 혐오하는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태도 그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비판은 카렌 암스트롱의 지식 그리고 과학과 종교에대한 애정과 통찰이어 가능한 비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따라다니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과학"을 모르는 만큼 "종교"에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우리는 스스로 "종교"에대한 어느정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 알고있는 "믿음(belief)"라는 단어 자체부터가 불과 몇백년 안에 그 본래 의미가 윤색 되었다는 사실은 안다면 놀랍다. 종교의 본래의 미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의 종교인들이 바라본 종교는 틀림없이 과거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달라야만하는것이아니라 실제로 초기영성가와 교부 그리고 신앙인들은 "신"은 언어로는 정의하지 않았으며 그 초월성과 신비자체를 그대로두었다. 또한 타인에대한 공감을 통한 의식변화와 확장이 종교의 가르침이었다. 이는 어떤 과학자가 말햇듯 진화론에대한 오해의 가장 문제점은 우리가 "진화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 라고 말한것을 상기하게만든다.

미토스적 감성의 신학을 로고스적 감성의 과학으로 풀어나갈때 부조화는 역효과가 날것이며 그 역도 마찬가지일진데 최근 근본주의자 창조과학이라는 믿음을 진화론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모습들을 볼때 실소하지않을 수 없는 것이다. 현대는 더이상 하늘은 지고한 숭배의 대상이아니라 정복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땅은 무한한 자연의 생명의 상징인 어머의 대지가 아니라 '돈'으로 환산된 가치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현대 자본주의 많은 병폐와 한계성에대한 해법은 어쩌면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현실적인 상황에 처한 상황을 감성적으로 극복하기위해 필요한 바로 그 미토스적 감성을 회복시키는것이 하나의 문제해결 방법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면에서 카렌암스트롱이 일갈한 종교의 참의미는 과거의신화를 지금 바로 다시 회복해야 찾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위한 변론>을 읽고나면 신앙인들은 내가 믿는 '신'은 어떤신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하고 무신론자라면 나는 어떠한 개념의 '신'에 대해 거부하는지를 스스로 물어봐야할것 같다.



신을 위한 변론 - 10점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오강남 감수/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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