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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체계적 이해 - 고익진

category 책/신화,종교 2016.12.19 18:35


불교에대한 종교사적인 내용을 기대하고 몇달 전 사둔책이다. 또 하나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다. 병고 고익진 선생님은 이책을 통해 알게되었는데 한국에서 초기불교 연구와 대중화에 크게 기여하신분이라고 한다. 이런 학문적 성과보다는 나같은 대중은 드라마틱한 삶에 끌리는건 어쩔 수 없나보다. 젋을때부터 심내막염을 진단받고 병원에 5여년 가까이 지냈고 병원으로 부터 살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았다고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무등산 자락에서 기도를 하셨는데 이곳에 머무르면서 고익진 선생님은 참선을 시작하고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다고한다. 반야심경의 어떤 구절이 선생님의 마음을 크게 울렸다고 한다. 그뒤로 불교에 입문하여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불교에대한 연구활동의 끈을 놓치 않으셨다고 한다. 크게 울린 구절은 반야심경의 "눈도 없고 색도 없다" 구절 이었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눈도 있고 색도 있는데, 그것이 없다니...

그 후 3년간 밤낮으로 이 구절의 뜻을 스스로 묻고 또 물었다고 한다. 이런것이 종교현상에서 말하는 "회심" 이라는 극적인 사건일까? 자신의 호까지 병고 라니 의아하기까지한다. 검색을 해보니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구절로 자신의 병을 괴로움으로가 아니라 약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이런 분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자체만으로 자연스레 존경심이 나오는게 아닌가 생각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이 책을 통해 불교에대한 이론이나 해석을 기대하기보다는 불교 자체에대한 역사적인 배경이나 불교가 추구하는것이 뭔지 큰그림을 보기를 기대했다. 입문자를 위해서 씌여졌다고는 하나 내용자체는 나에겐 매우 어려웠다. 일체,무아,십이처설,사성제,육바라밀 등의 개념이 한문과함께 활자화 되어있는 책이 나에게 쉽게 다가올리가 없었다. >.< 지금도 정확한 개념은 모른다. 

나는 부처님을 보고 깨달음을 수행하는 종교인도 아니기에 불교색채 가득한 단어들도 어색하게 다가왔을 뿐이다. 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사성제,팔정도는 눈에 익은것 말고는..

그래도 책을 읽고 느낀점은 불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시작으로 하는 굉장히 인간적인 종교라는 점이다.(표현이 맞는건지는 모르겟지만)

창조자와 같은 절대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현실속에 나를 시작으로 이 세계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데(즉 내부로부터) 출발점 부터가 그것과 완전히 다른 종교인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믿음 보다는 수행을 중시하며 개인의 깨달음을 중요하시는것이다.(정토신앙과같은 믿음성격도 있지만 서양의 그것과는 정도가 다르다.)

내가 알기로는 부처님의 죽음또한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제자 아난다의 품에서 늙고 병든 한 인간으로서의 부처의  마지막 유훈은 "수행, 또 수행하고 정진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점에서 인간적인 종교로 여겨저 개인적으로 불교에대한 큰 거부감은 없다. 물론 우리나라의 불교역사가 1천6백년 이라고하는데 오래랜기간 우리 민족과 함께한 종교라 그 거부감이 덜 한 이유도 있을 수 있겠다.

부처님은 인간적이었으나 싯다르타라는 영적지도자의 천재성과 혁명은 인간을 초월한것이었다. 무슨말? 

싯다르타의 출가할때 인도의 사상은 바라문사상, 브라만사상 ,사문파 등으로 혼재해 있었다고 한다. 모두 자신의 영성이 진리라고 이야기할때 였던것이다. 이 모든 사상을 접하고서도 부처님 스스로 종교적성취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결국엔 이 모든 기존사상을 개혁하여 부처님만의 사상을 전개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것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구지 비교 하자면 예수님은 기존 유대 종교신을 부정한것이아닌 기존 토대위에 다시 새롭게 한걸로 알고 있다. (징벌의신->사랑의 신으로 개혁)

카렌암스트롱의 <축의시대>참고하면 BC 500~AD100 사이의 인도,지중해의 영성과 사회적 분위기에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참고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3부의 불교와 기독교 장에 우리 민족의 전통종교인 무(巫)와 불교의 만남이나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에대한 설명은 흥미롭게 읽었다. 또한 한국 불교의 시작과 특징을 정리하고 앞으로 한국불교가 나아갈 길까지 제시한것은 큰 의미가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이들었다. 우리나라 해당 종교지식인(?)이 해야할 것이 이런작업이지않을까 어렴풋하게 생각했다. 막 써내려간 리뷰지만 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항상그렇지만)

병고 고익진 선생님의 삶을 더 알아보시려면 여기 



<내용중 북마크>

- 아함,반야,법화: 인간의 현실적 존재를 분석적으로 관찰하여 괴로움의 원인을 밝혀 그 해결책을 마련해 주는 아함경의 복잡한 교설은 모든 것은 공空하다는 반야경에 이르고, 이것은 다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불成佛과 중생교화에 있다는 법화경의 교설에 이른다.

- 십이처로부터 사대.오온에 이르는 모든 것은 하나도 항구불변한 것은 없다. 그러기에 "일체는 무상하다"고 석가모니께서는 언설하신다.

- 불교의 현실 판단은 이 무아설에 이르러 일단락을 이루는데, 이것은 인도 정통파 철학 사상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아트만사상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무아설은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입장으로서 인도철학사 가운데 이채를 띤 사상이라고 평가됨은 이때문이다.

- 삼법인의 무아설을 살핀 끝에, 불교의 무아설은 잘못된 아견我見을 시정하려는 것이지 참다운 나의 탐구를 부정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나의 실체 또는 본질이란 어떤 것일까? 상일.주재의 성질을 가져야만 할 그 참다운 나란, 바로 무상한 존재 속에 상주하는 이 법칙성이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

-십이연기설은 우리에게 인간의 죽음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서 연기한 것임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 부파불교가 이렇게 대중으로부터 소외되고 있을 때, 교계의 한편에서는 석가모니께서 뜻한 불교의 진정한 정신을 되찾으려는 사상운동이 발생하였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고 하는데, 재가인의 적극적인 참여와 혁신적인 출가인의 지도층이 그 추진세력을 형성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열반을 추구하는 아라한의 길을 '소승'이라고 비판하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자리이타적인 보살(bodhisattva)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부각 하였다.

-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을 보리살타 또는 줄여서 보살이라고 한다. 보리는 깨달음을, 살타는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또는 깨달음 속에 있는 중생이라는 말이 된다.

- 대개의 종교는 궁극적인 실재나 원리로부터 시작하여 세계와 인간을 설명해 내려오는 방법을 취한다. 그러나 불교는 이와는 정반대로 현실 세계의 관찰로 시작하여 궁극적인 원리나 실재를 탐구해 들어가 마침내 그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법을 취한다.

- 연기만 알면 불교철학은 다 알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아함에는 육근.십이처.육육법.오온.사제.십이연기와 같은 법들이 잡다하게 산설되어있다.

- 우주의 근원 : 기독교-신, 유교-역易 , 불교-무기 無記  (형이상학적 질문에대한 소극적 대답 - 독화살 이야기)

- 존우화작인설은 우주의 창조는 물론, 그 안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그 원인이 신에게 있다는 견해로서, 정통 바라문의 우주론이 여기에 포섬된다. 숙작인설은 그러한 원인은 과거에 지은 바에 있다고 보는 견해로서, 니간타를 여기에 포섭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셋째 무인무연설은 모든 현상은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우연론으로서, 니간타 이외의 사문들은 이곳에 포섭시킬수가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이 세가지 우주론 모두 비판 하시었다. 인간의 죄악이라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고. 동시에 인간에게 자유의지와 그에 입각한 노력이 있다는 엄연한 현실적 사실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 이다. 불교에서는 업설에 의한 우주론을 설하고있는데 숙명론과 혼돈 하는 사람이 있으나 과거의 업보다는 현실을 타개해 나갈 현재의 인간의지와 노력에 커다란 비중이 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 불교는 아트만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정하고 일어났다. 이것이 불교의 무아설로서 인도 철학사에서 이채를 띠는 가장 특징적인 사상이다.

- 무아설은 '나'를 부정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부정되는 것은 무명에서 연기한 '온'의 '나'이므로 참다운 '나'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참다운 '나'는 오히려 그러한 부정을 통해야만 나타난다. 

- 불교의 무아설은 단순한 무아설이 아니라 연기에 입각한 연기무아설이다.

- 관세음보살님의 변화관음을 단순한 조형예술적 동기에서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보다는 당시 인도에서 신앙되고 있던 힌두이즘의 신들을 과세음화하려는 것에 보다 근본적인 동기가 있었지 않았나 느껴진다. (천수관음,성관음,여의륜관음,십일면관음,준지관음,마두관음...)

- 관세음보살이 부처의 몸이면서 보살로 있는 것은 중생을 건지려는 큰 슬픔때문이라는 것이다. <천수다라니경>

- 불교의 생각한다는 말은 다른 종교의 믿는다 는 말에 해당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믿음'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을 '믿어라' 하는 것보다는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라'고 하는것이다.

- 신라 불교는 전통적 하느님 관념을 완벽한 제석천 체계로 불교화하고, 그로써 김씨 왕실의 종교적 권위를 확립하고 있다.

- 불교의 사회윤리는 은恩을 바탕으로 이뤄진다.

- 사제.팔정도는 사회적인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업설과는 달리, 한 인간의 내심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한국 고대종교는 자연신교적 태양신에서 발달한 '하늘임'을 최고 지배신으로 무교巫敎였다고 말할 수 있다.

- 불교윤리는 십업설 -> 사제설 -> 육바라밀 -> 일불승설로 전개되는 중층적 교리조직 속에서 설해지고 있다. 

- 업설은 불교의 가장 기초적인 교리일 뿐만 아니라 삼국에 전래한 초전기 불교의 중심사상도 그것이었다. 그러한 업설은 전래 당시엔 국가발전에 장애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던 귀족세력의 무교적 사상기반을 해소하려는 정치성을 띤 것이었다.

- 반야경이 아함경과 다른 본질적인 차이는, 후자가 망념을 다한 진리의 세계는 절대적인 가치라고 보고 있는데 반해서, 전자는 그렇나 열반도 공이라고 보는 데에 있다. 

- 아함.반야.법화의 삼부경만은 모든 불자가 다같이 지송하고 연구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뜻을 다 모르지만 정리하였으니 한번 읽고 책을 읽으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불교의 체계적 이해 - 8점
고익진 지음/광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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